건축

조상의 집, 살아 있는 조각: 뉴질랜드 마오리 전통 건축의 구조

rich-love 2025. 4. 19. 09:29

1. 조상과 영혼이 깃든 건축의 기원

[키워드: 마오리 전통 건축, 뉴질랜드 원주민 문화, 와레 누이 기원]

뉴질랜드의 마오리(Māori) 건축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조상, 신화, 공동체의 정신이 응축된 살아 있는 구조물이다. 마오리인들은 13세기경 폴리네시아에서 뉴질랜드로 이주하면서 선조로부터 전해진 조형 감각과 신화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다. 이들 전통 건축물의 대표는 바로 ‘와레 누이(Wharenui)’, 즉 집단 회의 공간이자 조상신의 몸을 형상화한 집이다.

와레 누이는 마을(마라에, marae)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진다. 각 와레 누이는 특정 조상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며, 건축 자체가 조상의 신체 구조를 모사한다. 지붕은 척추, 서까래는 갈비뼈, 중앙 대들보는 심장을 상징한다. 즉, 이 건축은 구조 자체가 신화적 언어로 구성된 것이다. 이러한 기원적 의미는 마오리 건축이 단순한 기능적 주거를 넘어서 정체성, 역사, 영성을 담은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조상의 집, 살아 있는 조각: 뉴질랜드 마오리 전통 건축의 구조

 

2. 기후와 환경에 맞춘 유기적 구조 설계

[키워드: 전통 목재 구조, 마오리 건축 자재, 기후 적응형 건축]

마오리 전통 건축은 뉴질랜드의 온대 해양성 기후에 맞게 설계되었으며, 자연 재료를 이용한 유기적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건축 재료는 토착 나무(특히 토타라 Totara, 카우리 Kauri), 잎사귀 섬유(하라케케 harakeke), 식물성 로프, 자연 점토 등으로, 이는 모두 지역에서 채취 가능한 자원이다. 목재는 수공 도구로 조심스럽게 다듬어 건축 부재로 가공되며, 건물은 대체로 지면 위에 기둥으로 띄워 세워지는 형태로 건조와 환기를 고려한 설계다.

구조는 중앙 기둥(포우토코만와, poutokomanawa)을 중심으로 대들보(타후후, tahuhu)가 지붕을 지탱하고, 양측 서까래(라프라파, rafter)는 좌우 대칭으로 갈비뼈처럼 배열된다. 외벽은 단단한 나무판자로 덮되, 벽체 사이사이는 종려나무 껍질이나 식물 섬유로 채워 단열 성능을 강화했다. 지붕은 이엽식물 잎으로 엮어 만든 짚 또는 갈대 뭉치로 마감하며, 방수 기능도 뛰어났다. 이러한 구조는 비, 바람, 습기와 같은 기후 변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기후순응형 전통 건축의 대표 사례다.

 

3. 조각과 문양을 통한 건축의 언어화

[키워드: 마오리 조각, 카우와이와이 문양, 와카로카로 문화]

마오리 건축의 구조는 단지 기술적 구성 요소만이 아니라, 조각과 문양을 통해 이야기와 정체성을 전달하는 시각 언어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건축 부재에는 와카로(Wakairo)라 불리는 전통 조각 기술이 적용되며, 이는 부족의 역사, 전설, 혈통, 전쟁과 평화의 기록을 상징적으로 새겨 넣은 장치다. 특히 기둥과 보에는 조상신이나 신화 속 영웅의 형상이 새겨지며, 이는 건축 공간이 말하는 존재로 기능함을 의미한다.

내부 벽에는 ‘카우와이와이(Kowhaiwhai)’라 불리는 기하학적 문양이 반복적으로 그려지며, 이는 생명의 흐름, 가족의 확장, 계보의 연속을 의미한다. 색상은 대개 붉은색, 검은색, 흰색의 조합으로 사용되며, 각 색은 생명, 죽음, 정화의 상징이다. 이러한 장식 요소는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서, 건축을 통한 문화의 기억 장치이며, 건축물이 일종의 ‘살아 있는 책’처럼 기능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현대 건축이 간과하기 쉬운 영적, 상징적 설계 요소의 집약체로서 재조명되고 있다.

 

4. 마오리 건축의 현대적 계승과 공동체적 의미

[키워드: 마라에 현대화, 문화유산 계승, 공동체 중심 공간]

현대 뉴질랜드 사회에서도 마오리 전통 건축은 여전히 공동체 정체성과 문화적 연속성을 담는 핵심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와레 누이는 법적 회의, 가족 모임, 장례, 축제, 교육 활동마오리 사회 전반의 중심 무대로 활용되며, 건축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 삶의 중요한 장면을 담는 무대가 된다. 최근에는 정부 및 교육기관과 협업을 통해 마라에 공간의 현대화와 복원 프로젝트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일부 현대 마오리 건축은 전통적 구조와 조각 문양은 유지하면서도, 철골 구조, 유리 창호, 고효율 단열재 등을 도입하여 지속 가능성과 현대적 편의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동시에 마오리 장인들과 청년들을 위한 와카로 교육 프로그램, 문화 건축 워크숍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전통 기술의 단절을 방지하고 있다. 이는 마오리 건축이 과거의 유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삶과 미래의 공동체까지 품어내는 진화된 공간문화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