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베트남 식민지 건축에 스며든 프랑스의 흔적

rich-love 2025. 4. 17. 06:57

1. 프랑스 식민지배와 베트남 건축의 역사적 전환

[키워드: 베트남 식민지 역사, 인도차이나, 프랑스 건축 영향]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프랑스는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 통치하였다. 이 시기는 단순한 정치·경제적 지배를 넘어, 문화적, 도시적, 건축적 재편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문명 우월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베트남의 공공 공간과 건축에 자국의 건축 양식과 도시계획 사상을 이식했다. 특히 하노이, 호치민시(옛 사이공), 다낭 등 주요 도시에서는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및 아르데코 양식이 주를 이루는 건축물이 급속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전통 건축이 목재와 기와, 자연 중심의 배치에 기반을 두었다면, 식민지 시대 이후에는 대리석, 철재, 스투코, 아치, 돔, 기둥 등 프랑스식 석조 건축 기술이 도입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능의 변화가 아니라, 제국의 권위와 문화적 위계 질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상징 행위였다. 프랑스는 베트남 도시를 '문명화된 동양'으로 재편하려는 의도로 도로망, 광장, 행정 중심지를 설계하며, 베트남 건축에 구조적이고 형태적인 새로운 질서를 도입했다.

베트남 식민지 건축에 스며든 프랑스의 흔적

 

2. 건축 양식의 변용: 신고전주의와 아르데코의 도입

[키워드: 신고전주의 건축, 아르데코 양식, 식민지 건축 미학]

프랑스가 베트남에 도입한 대표적인 건축 양식은 **신고전주의(Classicism)**와 **아르데코(Art Deco)**였다. 신고전주의 건물들은 보통 대칭적 평면, 코린트식 기둥, 삼각형 페디먼트, 기하학적 장식으로 특징지어진다. 대표적인 예는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Hanoi Opera House)**와 **사이공 중앙우체국(Saigon Central Post Office)**이다. 이들 건물은 파리 오페라 하우스와 같은 프랑스 본토의 건축을 모델로 하여, 식민지 공간에 유럽 문명의 상징물을 이식한 결과물이다.

1930년대 이후에는 보다 세련되고 기능적인 아르데코 양식이 확산되었다. 아르데코는 장식성을 유지하면서도 간결한 선과 기하학적 모티프, 수직적 상승감을 강조하는 양식으로, 프랑스 극동은행, 호텔 마제스틱, 하노이 기차역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건물들은 당시 유럽의 최신 건축 조류를 반영하며, 베트남 도심에 근대적 분위기와 국제성을 부여했다. 식민지 건축은 베트남 전통 요소와 절충되기도 했는데, 일부 건물에서는 지붕의 곡선이나 장식에서 동양적 미감을 삽입하려는 시도도 나타난다.

 

3. 도시계획과 공공 공간의 프랑스적 조직 방식

[키워드: 식민 도시계획, 방사형 도로망, 광장 중심 배치]

프랑스는 단순한 건물 양식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조직 구조에도 프랑스적 질서를 반영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방사형 도로망과 중심집중형 도시계획이다. 하노이의 경우, 프랑스 파리를 모방해 중심 광장을 기준으로 대로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구조가 채택되었으며, 이는 도시의 위계성과 행정의 효율성을 동시에 반영한 결과였다. 이러한 도시계획 방식은 시민의 동선을 통제하고, 제국의 통치력을 공간적으로 각인시키는 수단이었다.

프랑스는 또한 도시의 곳곳에 대형 광장, 공원, 분수, 유럽식 정원을 조성해, 베트남 전통 마을의 자생적 골목 구조와는 다른 계획적이고 선형적인 도시 조직을 구축했다. 이는 단지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식민 권력의 시각화 전략이었으며, 근대화된 ‘도시 시민’으로서 베트남인의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런 도시 구조는 지금도 하노이, 호치민시의 중심 지역에서 그대로 유지되며, 프랑스 식민 지배의 공간 흔적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4. 현대 베트남에서의 재해석과 문화유산 가치

[키워드: 식민 건축 보존, 문화유산 재해석, 건축 관광 자원화]

베트남은 오랜 독립 운동과 반식민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축 유산을 부정하기보다는 문화 자산으로 보존하고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하노이와 호치민시에서는 오페라 하우스, 박물관, 관공서 건물 등 역사적 건축물을 복원하거나 리모델링하여 현대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으며, 이는 관광 자원으로도 높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과거의 식민 지배 흔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정체성과 다양성을 포용하는 공간 철학으로 발전시키는 중이다.

현대 베트남의 건축가들 역시 프랑스 식민지 시대 건축 양식을 역사적 참고자료이자 창조적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일부 건축에서는 신고전주의적 입면을 현대식 구조에 결합하거나, 아르데코 스타일을 복합문화공간에 응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동서양의 절충 양식을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과거를 계승하는 것을 넘어, 베트남 고유의 전통과 외래 건축 양식을 통합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